●작품 내용
거사(居士)는 게으름 병이 있었는데, 찾아온 손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데도 오히려 게으름을 붙여 두고, 몸은 왜소한데도 여전히 게으름을 지니고 있소. 집 한 채가 있는데 풀이 우거져도 게을러 깎지 않고, 천 권의 책이 있는데 좀이 먹어도 게을러 펼쳐 보지 않고, 머리가 헝클어져도 게을러 빗지 않고, 몸에 옴이 있어도 게을러 치료하지 않소. 남들과 노는 것도 게으르며, 남들과 왕래하는 것도 게으르오. 입은 말하는 데 게으르고, 발은 걷는 데 게으르며, 눈은 보는데 게으르오. 땅을 밟거나 일을 하거나 게으르지 않는 것이 없소. 이와 같은 병은 어떤 방법으로 고칠 수 있겠소?”
손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물러나 열흘쯤 뒤에 게으름 병을 낫게 할 방법을 찾아 다시 이르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동안 만나지 않았더니 너무나 그리웠소.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싶소.”
거사는 게으름 병이 다시 도져 만나고 싶지 않았다. 손님은 굳이 만나기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한동안 거사의 부드러운 웃음소리와 좋은 말을 듣지 못하였소. 지금은 늦봄이라 새는 정원에서 울고 바람과 햇살은 가득하며, 온갖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소. 내게 좋은 술이 있는데, 술거품이 동동 떠 있고 향기는 온 방에 가득하며 훈기는 항아리에 가득 차 혼자 마시기가 미안하니, 그대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마시겠소? 집안에 노래도 잘하고 생황도 잘 불며 또 호쟁(胡箏)도 탈 줄 아는 시종이 있는데, 차마 혼자 들을 수 없어 선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소. 그런데 선생은 왕림하기를 꺼리니, 잠시 다녀 갈 생각은 없소?”
거사는 기뻐서 옷을 떨쳐입고 일어나며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늙고 쇠약하다고 여기지 않고 맛 좋은 술과 어여쁜 여인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하니, 내가 어찌 굳이 사양하겠소?”
이에 외려 늦을세라 허리띠를 매고, 외려 더딜세라 신을 신고는 서둘러 나서려고 하였다. 그런데 손님의 태도는 느릿느릿하고, 입 또한 게을러 대답도 못 할 듯하였다. 이윽고 손님은 다시 태도를 고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가 이미 내 초청을 수락하였으니, 나도 말을 바꿀 수 없을 듯하오. 그러나 선생이 예전에는 말하는 것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말이 재빠르고, 예전에는 돌아보는 것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민첩하게 돌아보고, 예전에는 걷는 것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신속하게 걷고 있소. 선생의 게으름 병이 이젠 다 나은 것이오? 그런데 말이오, 성품을 해치는 도끼로는 여색이 가장 심하고, 창자를 상하게 하는 약으로는 술보다 더한 것이 없소. 선생은 유독 여색과 술 때문에 저도 모르게 게으름이 고쳐져서 마치 장에 가는 사람처럼 행동이 재빠르오. 이대로 가다가 선생이 결국 성품을 손상시키고 몸을 망가뜨릴까 두렵소. 나는 선생이 이렇게 되는 것이 싫어서 선생과 말하는 것이 게을러지고 앉는 것도 게을러지오. 생각건대, 선생의 게으름 병이 나에게 옮겨 온 것이 아니오?”
거사는 얼굴을 붉히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사과하였다.
“훌륭하도다. 그대가 나의 게으름을 풍자함이여! 나는 접때 그대에게 게으름 병이 있다고 말하였소. 그런데 이제 그대의 말 한마디에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보다 빨리 나도 모르게 게으름이 종적을 감추어 버렸소. 즐기려는 욕심이 이처럼 신속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처럼 쉽게 사람의 귀를 파고드는 줄을 이제야 알았소. 이런 식으로 간다면 사람의 몸이 빠르게 재앙을 입게 될 것이니, 진실로 삼가지 않을 수 없소. 내 이 마음을 돌려 게으름을 제거하고 힘써 인의(仁義)를 공부하려고 하오. 그대는 어떻게 생각 하오? 나를 조롱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게나.”
●핵심정리
▶연대 : 고려 때
▶갈래 : 설
▶성격 : 풍자적, 교훈적, 우의적
▶주제 : 게으름에 대한 경계와 올바른 삶의 자세
▶특징
-‘게으름을 풍자하다’는 의미로, 흥미로운 일화를 보여 주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독자의 깨달음을 이끌어 내고 있다.
-거사의 게으름을 우스갯소리로 만들어 풍자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인의를 닦아 실천하여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킬 것을 역설하고 있다.
-객(客)의 말하기 방식은 거사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꾸짖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함.
●구성
-거사의 말: 거사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하소연함.
-손님의 방문: 술자리에 거사를 초청함.
-손님의 지적: 거사의 달라진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
-거사의 말: 거사가 자신에 대해 반성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고려 때 이규보가 창작한 것으로,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게으름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색을 경계하고 인의에 힘쓰면서 살아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게으름을 고치기 위해 동원한 손님의 기발한 계책을 흥미롭게 보여 주고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과감하게 고치려는 거사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추가>
이규보의 설로, 거사와 손님의 짤막한 대화를 통해 게으름을 탈피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색(酒色)을 경계하고 인의(仁義)에 힘쓰면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거사의 게으름을 치유하기 위해 꾸며낸 객의 묘안이나, 객의 말을 듣고는 그동안의 게으름을 다 잊어 버리고 서둘러 나서는 거사의 행동, 그리고 게으름 병이 생겼다고 핑계하면서 거사를 각박하게 꾸짖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객의 모습 등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읽는 이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하면서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글이다.
공지사항 
2-1 수업활동
고전문학
이문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