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곤, 띄어쓰기 실상과 해결방안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쓴다.’는 대원칙은 1933년 맞춤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제시되어 왔다. 따라서 단어를 띄어 쓰기만 하면 모든 띄어쓰기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그 간단한 ‘단어를 띄어 쓰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하나는 단어가 가진 태생적인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원칙 적용에 있어서 일관성의 문제이다.
첫째 문제는 어디까지를 ‘단어’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큰아버지, 밤낮, 바늘방석’ 등과 같은 합성어는 이미 그 의미가 새롭게 변했거나, 음운론적 변이를 겪은 것들로 혼동의 우려가 거의 없으므로 당연히 하나의 단어이며, 붙여 써야 한다. 그러나 ‘품질 관리, 출입 금지, 민주 국가’ 등과 같은 명사 연결체들은 합성어인지 구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현행 맞춤법과 《표준국어대사전》의 지침에 의하면 이러한 구성들은 띄어 써야 하고 사전에 등재되지도 않는다. 이때 제시되는 기준은 의미의 투명성이다. 이들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단어 각각의 의미가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합성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민주 국가 → 민주적인 국가’ 등으로 통사적 구성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합성어로 인정하고 있는 ‘건강관리’, ‘통행금지’, ‘약소국가’ 등도 의미적 투명성이나 통사적 구성으로의 전환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단어가 가진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띄어쓰기의 원칙 적용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핵심은 띄어쓰기의 원칙에 있어서 단어가 가진 의미의 독립성을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단어의 문법적 기능을 기준으로 한 품사성을 강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맞춤법 해설집》에 따르면 ‘단어는 독립적으로 쓰이는 말의 단위이기 때문에, 글은 단어를 단위로 하여 띄어 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고 말하고 있다. 즉, 홀로 쓸 수 있는 ‘독립적인 단위’인 단어는 띄어 쓴다는 것이다. ‘철수가 밥을 먹는다.’의 경우 ‘철수가/밥을/먹는다.’와 같이 세 개의 독립적인 단위가 생기고 이들을 띄어 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사’는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쓰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단어의 ‘독립성’이라는 정의가 일관되게 적용된 셈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다른 항목에서는 적용되지 못한다. 《맞춤법 해설집》에서는 의존 명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존 명사는 의미적 독립성은 없으나 다른 단어 뒤에 의존하여 명사적 기능을 담당하므로, 하나의 단어로 다루어진다. 앞 단어에 붙여 쓰느냐 띄어 쓰느냐 하는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었지만,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쓴다는 원칙에 따라 띄어 써야 한다.”
보조 용언의 경우도 유사하다. 보조 용언에 대한 해설에서는 ‘각 단어는 띄어 쓴다는 일관성 있는 표기 체계를 유지하려는 뜻에서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도 일관성을 위한다고 했지만 띄어쓰기의 기준은 품사성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준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언중들의 띄어쓰기의 혼란상만을 지적하고 문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통 신호 체계는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신호 위반에 대해 단속만 강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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