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보충 자료
1. ‘유리창’의 창작 배경
정지용에게는 자녀가 10명이 넘게 태어났지만, 대부분을 잃고 4명만 별탈 없이 장성한다. 특히, 1927년에서 1030년 전후에 잃은 자식의 경우는 꽤 자라서 잃은 것으로, 그 충격과 슬픔은 대단히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은 <열병(熱病)>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 오르노나. / 가쁜 숨결을 드내 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多神敎徒)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열병(熱病)의 일부
‘아아’라는 비탄의 부르짖음, 급박한 어조로 거듭되는 쉼표의 단절과 감탄 부호는 자식의 고통에 대한 애처로운 부정(父情)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아이는 거듭 열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불도 약도 달도 없는 캄캄하고 속수무책인 밤이다. 자아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끝내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다.
2. ‘유리창’의 기능과 의미
유리창을 경계로 하여 바깥과 안이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는 이항 관계를 보면, 우선 밖에서 유리창에 와 닿는 것은 차고 슬픈 것이며 안에서 유리창과 접촉되어 있는 것은 입김을 흐리우는 것입니다. 열없이 붙어서 있는데도 입김이 창에 흐리우게 되는 것은 그만큼 밖이 차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방안은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시의 구성 자체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깥과 안의 차가움과 따사로움이 교체되어 있습니다.
즉, 1행 - 바깥 차가운 공기 = 바깥바람(어른거리게 하는 것)
2행 - 안 , 따스한 공기 = 입김, 열기(창을 흐리게 하는 것)
3행 - 바깥 , 차가운 것(언 날개)
4행 - 안 , 입김, 열기(지우고 보고)
두 번째 대립항은 창 밖의 공간은 어둡고 그 안은 밝다는 것입니다.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라고 한 말에서 우리는 창 안이 밝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 받게 됩니다. 즉 방 안이 밝기 때문에 밤은 유리창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밀려 나가는 것입니다. 한(寒)/난(暖)의 대응이 5행 이후에 오면 암(暗)/명(明)의 대비로 바뀌는 것이지요.
5행 - 바깥, 어둠
6행 - 바깥, 어둠 속이 빛(별빛)
7행 - 안, 밝음(유리를 닦는 것, 빛나게 하는 것)
8행 - 안, 밝음 속의 어둠(외롭고 황홀한 심사)
그리고 마지막 두 행에 이르면 폐혈관이 찢어져 산새처럼 날아가 버린(전기적 비평에서는 딸의 죽음) 죽음이 등장함으로써 바깥은 죽음, 안은 생으로서 이른바 이승과 저승의 두 관계항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유리창은 결국 생사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죽음을 통해서 생이, 생을 통해서 죽음이 나타나게 되는 매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창이 가깝기 때문에 입김이 서리는 것입니다. 죽음의 차가움이 있기에 비로소 생명은 입김처럼 서릴 수 있지요. 생은 그 반대쪽의 죽음의 감촉에 의해서 비로소 빛과 그 열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 이어령, ‘창(窓)의 기호론에서’
* 유리창은 차단과 투시의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차가움’과 ‘따뜻함’의 대비, ‘밝음’과 ‘어둠’의 대비, ‘삶’과 ‘죽음’의 대비를 통해 ‘죽은 아이’와 시적 화자 사이를 가로막는 운명적 단절, 차단의 기능을 함과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교감의 매개체, 즉 투시의 기능도 하고 있다.
3. 정지용의 ‘서늘함의 시학’
안으로는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하옵기란 일종(一種)의 생리(生理)를 압복(壓伏)시키는 노릇이기에 심히 어렵다. 그러나 시의 위의(威儀)는 겉으로는 서늘하옵기를 바라서 마지 않는다. / 슬픔과 눈물을 그들의 심리학적(心理學的)인 화학적(化學的)인 부면(部面) 이외(以外)의 전면적(全面的)인 것을 마침내 시(詩)에서 수용(收容)하도록 배치(配置)되었으므로 따라서 폐단(弊端)도 많이 왔다. 시(詩)는 소설(小說)보다도 선읍벽(善泣癖)이 있다. 시(詩)가 솔선(率先)하야 울어버리면 독자(讀者)는 서서(徐徐)히 눈물을 저작(詛嚼)할 여유(餘裕)를 갖지 못할지니 남을 울려야 할 경우(境遇)에 자기(自己)가 먼저 대곡(大哭)하여 실소(失笑)를 폭발(暴發)시키는 것은 소인극(素人劇)에서만 본 것이 아니다. 남을 슬프기 그지없는 정황(情況)으로 유도(誘導)함에는 자기(自己)의 감격(感激)을 먼저 신중(愼重)히 이동(移動)시킬 것이다.
* 저작(詛嚼) : 음식을 입에 넣고 씹음. 글의 뜻을 깊이 파고 들어가 완미(玩味)함.
- 정지용의 <창작론>중에서
4. 감정의 대위법(對位法)
감정의 대위법이란, 모순되는 감정을 하나의 문맥 속에 결합시켜 표현하는 것으로, 미묘한 감정이 무늬를 형상화하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이 시에는 화자의 감정이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다. ‘차고 슬픈 것’, ‘외로운 황홀한 심사’ 등의 시구는 각각 차가운 것과 슬픔 것, 외로운 것과 황홀한 것을 대립시키고 있다. 슬픈 감정을 차가운 것에 의해 절제하며, 외로운 감정을 황홀한 감정에 의해 절제하고 있다.
5. 외로운 황홀한 심사
‘외로운’은 ‘황홀한’에도 적용될 뿐만 아니라, ‘심사’의 의미를 규정하기도 하며, ‘황홀한’ 또한 ‘외로운’과 ‘심사’ 모두에 걸쳐 있다. ‘외롭고 황홀한 심사’와 ‘황홀하고 외로운 심사’, ‘외로운 황홀’과 ‘황홀한 외로움’이 모두 가능하다. 이 시의 전체적 분위기는 정적인 것이지만, 이와 같은 이미지의 역동적 창조성으로 인해 생동감을 확보한다.
시인은 ‘슬픈, 외로운 황홀한’이라는 두 마디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감정적인 진술을 절제하고 있다. 다만, 밤에 홀로 유리창가에 서서, 유리창의 안과 밖의 정황을 나타내는 이미지만을 서술하고 있다. 이 때 유리창은 안과 밖을 단절하고, 서정적 주체와 대상이 각기 다른 상황에 있음을 보여주는 객관적 상관물의 역할을 한다. 유리창을 매개로 하여, 밖의 어둠의 세계와 안의 밝음의 세계를 구별하고 있으며, 밖의 죽은 아이의 세계와 안의 어린 아이를 그리워하는 어른의 세계가 대비되기도 한다. 아울러 이 유리창은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다. 즉, 밖의 어둡고 차가운 세계는 유리창에 차갑게 응결된다. 그리고 서정적 주체는 이 차갑게 응결되는 것을 지우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그 실체를 자꾸 확인하고자 한다. 유리창에 어리는 반짝이는 별, 물 먹은 별을 통하여 아이를 만나는 환상적인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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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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