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옹이 계속해서 말했다.
“옛날 증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둥글고 땅이 네모지다면 네 모퉁이를 가려 주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 말에서 유래되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것을 어떤 사람은 단순히 그 품성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도 하였다. 물론 옛사람에게서 전해져 기록한 말들을 믿는 것 또한 중요하지 만, 월식의 경우처럼 어찌 직접 보고 실증한 것만 하겠느냐? 진실로 땅이 모났다면 네 모퉁이, 여덟 각, 여섯 면이 모두 평면이고, 가장자리의 끝은 모두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서 마치 담이나 벽처럼 되어 있을 것이다. 참으로 그렇게 보이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강과 바다의 물은 물론이고, 사람과 만물의 모든 종류가 한 면에만 모여 살고 있느냐? 아니면 여섯 면에 퍼져서 살고 있느냐?”
“윗면에만 모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옆면에서는 옆으로 살 수 없고, 밑면에서는 거꾸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그러자 실옹이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옆으로 살 수가 없거나 거꾸로 살 수가 없다는 것은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냐?”
허자가 대답했다. / “예, 그렇습니다.”
실옹이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사람과 미세한 만물도 밑으로 떨어지는데, 어찌하여 무거운 땅덩이는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냐?”
허자가 대답했다. / “그것은 땅덩이가 허공의 기에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실옹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군자는 도를 논하다가 이치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지만, 소인은 도를 논하다가 말이 달리거나 옹색해지면 이내 말을 꾸며 댄다. 물에 배를 띄울 때 배가 비었으면 뜨고, 배가 꽉 차서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이런 이치로 본다면 ‘기’라는 것은 본래 힘이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큰 땅덩이를 싣는단 말이냐?”
(중략)
실옹이 계속해서 허자에게 일러 주었다.
“강과 바다의 물과 사람과 모든 만물이 땅의 윗면에만 모여 산다면, 중국과 그 주변 국가의 수만리 먼 곳 이나 가까운 곳이나 모두가 고르게 평평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태산과 같은 큰 산봉우리나, 바다 너머에 있는 높은 곳에서 바라본다면 한눈에 빠짐없이 모두 볼 수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
허자가 대답했다.
“제가 평소에 사람의 시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들었지만, 이치로 보아 혹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실옹이 말했다.
“사람의 시력이란 본래 한계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바다에서 보면 해와 달이 바다에서 나왔다가 바다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들에서 보면 해와 달이 들에서 나왔다가 들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하늘은 바다와 맞닿아 있고 들은 막힘이 없으니 시력에 한계가 있다는 말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 실옹이 계속해서 말한다.
“땅의 측량은 하늘의 관측을 기준으로 하는데, 하늘의 관측은 남북의 양극에 근본 기준을 둔다. 그리고 하늘을 관측하는 방법에는 세로로 관측하는 경(經), 경도와 가로로 관측하는 위(緯), 위도가 있다. 또 선을 드리워 놓고 그 직선의 각도를 바라보며 측량하는 것을 천정이라 하고, 극에서 거리가 멀고 가까움에 따라 위도가 얼마인가로 나타낸다. 지금 중국에서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으로 북쪽에는 러시아가 있고, 남쪽에는 캄보디아가 있다. 러시아의 천정은 북쪽으로 북극과 20도이고, 캄보디아의 천정은 남쪽으로 남극과 60도를 이룬다. 두 천정 사이는 90도이고, 두 지역 간 거리는 2만 2,500리이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은 러시아를 정기준의 세계로 삼아 캄보디아를 옆쪽의 세계라 말하며, 캄보디아 사람은 캄보디아를 정기 준의 세계로 삼아 러시아를 옆쪽의 세계로 일컫는다. 또 중국은 서양과 경도의 차이가 180도에 이르는데, 중국 사람은 중국을 정기준의 세계로 삼아 서양을 반대쪽의 세계로 여기고, 서양 사람은 서양을 정기준의 세계로 삼아 중국을 반대쪽의 세계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 들은 지역에 따라 다 그러하니, 옆쪽의 세계도 없고 반대쪽의 세계도 없이 모두 똑같은 정기준의 세계이다. 세상 사람들은 옛것에 안주하여 그저 습관처럼 따르면서 새로운 것을 살피지 않는다. 이치가 눈앞 에 있는데도 일찍이 탐구하여 찾지 않았기 때문에 한평생을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아가건만 그 실제 상황과 현상에 대해서는 캄캄하게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서양의 기술이 뛰어난 어떤 지역에서 의심되는 모든 부분에 대해 정밀하게 상세하게 측량하였다. 그러므로 땅이 둥글다는 주장은 다시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핵심정리
▶갈래 : 고전수필
▶성격 : 철학적, 사색적, 상대주의적
▶제재 : 사물의 가치 판단 기준
▶주제 : 잘못된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세계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
▶의의 :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이라는 대립적인 이름에서부터, 허자로 대표되는 세속 유학자의 학문과 그 마음이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드러낸다. 천지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며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유학의 사상을 타파하고, 사람이나 동식물이 모두 똑같으며 내가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며, 마음이 헛되어 유학, 즉 허학을 탐구하면 천하를 어지럽다고 말함으로써 실심(實心)으로 실사(實事)를 행해야 함을 주장한다.
●실옹의 말하기 방식 : 상대방의 답변에 대한 반례를 제시하며 상대방의 생각에 오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구성
-실옹과 허자가 만남.
- 실옹과 허자의 대화 1: 실옹이 사람과 천지만물은 똑같은 존재임을 말함.
- 실옹과 허자의 대화 2: 실옹이 지구는 둥글고 돌고 있음을 말함.
- 실옹과 허자의 대화 3: 실옹이 우주는 무한한 것임을 말함.
- 실옹과 허자의 대화 4: 실옹이 인간은 대자연의 법칙 속에서 살아감을 말함.
- 실옹과 허자의 대화 5: 실옹이 자신이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임을 말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담헌 홍대용이 북경을 다녀온 뒤 집필한 것으로, 홍대용의 자연 과학과 철학에 대한 입장을 잘 보여 준다. 허자와 실옹의 대화 속에서 홍대용의 실학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이 드러나는데, 특히 지전설과 지구 구형설은 조선의 우주관에 변화를 꾀하였으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 대한 비판은 인식의 전환을 통한 현실 개혁의 필요성을 드러내었다.
●더 알아보기
▲실옹과 허자의 대화 양상
실옹의 질문→허자의 대답→실옹의 반례→허자의 대답→실옹의 반레
▲저술 배경 : 저자인 담헌 홍대용은 북학파를 대표하는 실학자이다. 홍대용은 벼슬을 하지 않고 평생을 실학 공부에 정진하여, 고학, 상수학, 수학, 음악 등에 통달한 학자였다. 29세 때 혼천의를 만들고, 35세 때 연행에 함께한다. 《의산문답》은 바로 이 연행의 체험을 포함한 홍대용 스스로의 학문적 성취와, 그의 철학을 집대성하여 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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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이문수
